미학

[안티 오이디푸스](들뢰즈, 과타리) :: 2장을 읽고

biitmul 2022. 10. 5. 17:29
반응형

 

 

<안티 오이디푸스> 2장에는 융에 대한 소소한 비판이 있다. 만약 3년 전의 내가 이 부분을 읽었다면 아마 ‘들뢰즈가 아직 뭘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융의 이론에 사로잡혀 저서들을 읽고 파고들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들뢰즈의 말대로 그때는 일종의 환상에 빠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화의 구조와 개인의 신화를 탐구해 나간다는 명목으로 전세계 고대신화들과 꿈을 들여다보고 있다보면, 나의 현실이란 신화가 상징하는 것들을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일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상징을 살아내는 나 자신도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에 취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었다. 다만 스스로 증폭시킨 고통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나마 건강한 방법을 택해 (그게 유일하게 한 선택은 아니었으므로 건강하다고만 할 수 없고, 또 무엇인가에 중독되는 방식을 취한 것 역시 그렇지만) 그 당시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이 스터디를 통해 처음 만나면서 현실에서 깨어있는 방법을 많이 체화하게 된 것 같다. 현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오히려 그 책을 다 읽었을 당시에는(사실.. 어디가서 읽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차이와 반복이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에 순종하라’ 선언문을 쓴 것도 차이와 반복 서문을 읽은 후였고, 발제문을 쓰지 않고 차이와 반복 이론과 니체의 영원회귀를 융합한 그림을 그려 제출했던 것도 그때였다. 그 이후 스터디에서 읽는 거의 모든 책들을 해석할 때 차이와 반복을 기조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책이 내 인생에 그리고 우리 스터디에 끼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 힘을 깨닫게 된 것 또한 내게는 놀라운 경험이다. 일상을 환기하는 작은 깨달음이 아니라 인생의 틀, 일종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변모의 과정이었으므로 단숨에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상이 힘들거나 지겹고 무한히 재현하는 것 같을 때, 반복되고 있는 차이를 발견하는 일이 큰 힘이 된다. 같은 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늘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언제나 새로운 것이 반복되며 뿜어져 나오고 또 밀려가고 있다는 것, 이 반복은 영원히 새로울 것임을, 지루함도 권태도 내가 선택한 상태라는 것을 감지할 때, 삶은 조금 신선한 것이 된다. 그 미세한 틈에서 창조성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근데 왜 이렇게 술사진이 많은지••
2020, 스터디 드로즈 첫 해를 기억하며

2022.10.04

 

 


 
안티 오이디푸스(양장본 HardCover)
『안티 오이디푸스』는 20세기 철학의 위대한 성취,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과타리가 68혁명 이후의 현재적 상황을 반성적으로 사유한 끝에 내놓은 정치철학서를 새롭게 번역한 책이다. 기존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학과 맑스주의를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던 과타리는 1960년대 당시 프랑스 철학계 주류와 다소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던 니체주의자 들뢰즈와 68혁명을 계기로 ‘접속’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최초의 결과물이다.
저자
펠릭스 과타리, 질 들뢰즈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4.12.15

안티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분열증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긴이)

민음사

2014-12-15

원제 : L’Anti-Œdipe: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72년)

 

반응형